최형두의 계엄 발언
2026
왜냐하면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사유도 많고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해야 된다는 것도 있고요.
또 하나 결정적인 사실은 우리가 잘 잊고 있는 사실인데 계엄 당일 날 신성범 의원도 뛰어가고 여러 의원들이 뛰어갔습니다만 저도 늦게 들어왔습니다만 많은 의원들이 들어오지 못해 가지고, 저기 당사에 있었는데 그 당시에 그래도 국회가 빨리 신속하게 움직여서 200명 가까운 숫자로 계엄 해제를 의결했는데……
모여 있던 의원들이 왜 빨리 국무회의를 열어서 계엄 해제를 공식화하지 않느냐, 국무회의에서 확정하지 않느냐 해서 3시에 추경호 원내대표가 당시의 배준영 원내수석과 모여 있던 50명의 의원들과 기자회견을 합니다, 빨리 정부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여서 해제하라고.
그런 정황들이 다 반영되어서 된 것이고요.
여야 위원님들이야 개인적 의견을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공영방송은 특히 선거에 영향을 미쳐요.
지금 비상계엄을 했던 전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저희 당의 많은 의원들, 심지어 지금 우리 당의 당대표를 포함해서 많은 의원들이 여기에 뛰어 들어와서 함께 계엄을 해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경찰의 봉쇄로 들어오지 못한 의원들 50여 명은 의사당에서 가까운 당사에서 계엄해제 시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다가 해제가 된 이후 정부가 신속하게 계엄해제에 대한 국무회의를 열지 않자 빨리 국무회의를 열어서 계엄을 해제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그다음 날, 계엄해제 결의가 있었던 2시간 뒤에 했습니다.
50명이 함께했던 그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정당, 우리 정부의 잘못을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삼권분립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수의 여당 의원들께서도 잘 아시고 있을 대목이기 때문에 함께 지키자, 함께 이거는 허물지 말자.
지금 비상계엄을 했던 전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저희 당의 많은 의원들, 심지어 지금 우리 당의 당대표를 포함해서 많은 의원들이 여기에 뛰어 들어와서 함께 계엄을 해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경찰의 봉쇄로 들어오지 못한 의원들 50여 명은 의사당에서 가까운 당사에서 계엄해제 시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다가 해제가 된 이후 정부가 신속하게 계엄해제에 대한 국무회의를 열지 않자 빨리 국무회의를 열어서 계엄을 해제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그다음 날, 계엄해제 결의가 있었던 2시간 뒤에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수의 여당 의원들께서도 잘 아시고 있을 대목이기 때문에 함께 지키자, 함께 이거는 허물지 말자.
지금 비상계엄을 했던 전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저희 당의 많은 의원들, 심지어 지금 우리 당의 당대표를 포함해서 많은 의원들이 여기에 뛰어 들어와서 함께 계엄을 해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경찰의 봉쇄로 들어오지 못한 의원들 50여 명은 의사당에서 가까운 당사에서 계엄해제 시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다가 해제가 된 이후 정부가 신속하게 계엄해제에 대한 국무회의를 열지 않자 빨리 국무회의를 열어서 계엄을 해제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그다음 날, 계엄해제 결의가 있었던 2시간 뒤에 했습니다.
50명이 함께했던 그 기록이 있습니다.
탄핵소추도 여야 정당 간 협치로 함께 이뤘습니다.
지지난해 우리는 비상계엄을 여야가 함께 막았습니다.
지금 많은 여당 의원님들이 그 무렵에 눈을 감고서 오로지 하나의 푯대만 세워서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장동혁 대표도 바로 이 자리에 들어와서 계엄해제를 신속 해제하는 표결을 했습니다.
저도 마침 그날 마산에 상가를 다녀오면서 조금 늦었지만 우리 여당의 의원님, 야당의 의원님들과 함께 담장을 넘어 들어와서 그 표결을 뒤늦게 살폈습니다.
우리 당 의원들 30여 명도 국회의사당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우리 당 의원들 30여 명도 국회의사당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나머지 의원들은 들어오지 못해서 50여 명이 당사에 모여 있었습니다.
국회가 계엄해제 표결을 하는 순간 다 같이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신속하게 계엄해제 결의를 국무회의를 통해서 통과시키지 않자 새벽 3시에 당사에 모여 있던 우리 국민의힘 선배·동료 의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서 정부가 국회가 의결한 계엄 해제를 빨리 집행하라고 호소하고 독촉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민주주의를 함께 복원할 수 있는 힘과 협치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그래도 여야 정당 간에 협치가 있었습니다.
탄핵소추도 여야 정당 간 협치로 함께 이뤘습니다.
지지난해 우리는 비상계엄을 여야가 함께 막았습니다.
지금 많은 여당 의원님들이 그 무렵에 눈을 감고서 오로지 하나의 푯대만 세워서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장동혁 대표도 바로 이 자리에 들어와서 계엄해제를 신속 해제하는 표결을 했습니다.
저도 마침 그날 마산에 상가를 다녀오면서 조금 늦었지만 우리 여당의 의원님, 야당의 의원님들과 함께 담장을 넘어 들어와서 그 표결을 뒤늦게 살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정치싸움으로 밤낮을 지새우고 그해 가을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소추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지난해 비상계엄과 그 끔찍한 헌정파괴의 순간이 이 의사당에서 벌어졌고 그리고 탄핵이 있었고 대통령선거가 다시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일으키고 서방에, 전 세계에 민주주의 회복탄력성을 알리는 그런 계기로 정치를 복원시켜야 했지만 그러나 정치는 더욱 갈라졌고 더욱 진영으로 갔습니다.
이제 정당 간의 분열이 아니라 거대 정당, 거대 여당에서 한 정치부족이 정부 여당 전체를 지배하는 끔찍한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025
그리고 이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야기했듯이 동맹이라는 것은 부담이 아니다, 동맹이라는 것은 서로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멀티플라이(multiply)시키는 것이지.
그런데 트럼프의 협상술로 해서 압박했던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너무 긴장했던 탓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계속 그런 동맹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이루어진 해인데 지난해 12월에 정말 날벼락 같은 계엄 사태로 우리 정치가 쑥대밭이 되었고 나라도 지금 다시 한번 Great Again 하는 데 큰 힘을 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방미통위, 방심위 있지만 사실 국회가 따져 물을 수가 없는 처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능을 할 수가 없었는데 뭘 따져 묻겠습니까.
KBS도 저는 KBS 수신료 문제와 이런 걸 떠나서 KBS가 진정 글로벌 방송으로서, 아까 김민석 총리가 제국적 시각으로, 정말 제국적 시각……
우리 대한민국국회도 이제는 세계 민주주의의 등대가 됐습니다.
우리 계엄 가지고 참 심각하게 뭘 이야기하고 했습니다만 계엄 때 숨길 수 없는 사실은, 우리 당 의원들도 전부 계엄 반대했습니다.
늦게 들어왔지만 저도 의사당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당사에 있던 의원들도 계엄해제된 뒤에조차도 국회로 들어오지 못해서 당사에 머물고 있으면서 계엄해제를 지켜봤는데 계엄해제를 지켜본 뒤에 새벽 1시에 계엄해제 결의를 했지요.
그때 의장님이 용감하게 하셨는데, 그 뒤로도 계엄해제 국무회의를 하지 않길래 당사에 남아 있던 국회의원들이 직접 새벽 3시에 빨리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서 계엄을 해제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 아니겠습니까.
계엄이 났을 때 우리는 드디어 수십 년의 진보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은, 정말 철퇴를 맞는 것 같은 그런 암울한 기억이 들었습니다.
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장기화되면 완전히 나라는 남미의 추락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의장님 또 여당의 의원님들, 용감한 의원님들, 우리 당의 의원님들 모두들 달려와서 철벽을 뚫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자꾸 우리 당의 당시 원내대표를 비난하고 그러시는데 원내대표가 의장님께 전화를 해서 ‘의장님, 우리 빨리 들어가야 되니까 표결하기 전에 국회 문을 좀 어떻게 확보해 주십시오’ 부탁하는 전화 했지 않았습니까?
매우 유감스러운 의사진행이고 매우 통탄할 만한 발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여야가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협치를 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더구나 계엄 해제도 많은 다수의 의원이 못 들어왔습니다마는 상당수의 의원들이 같이 참여를 해서, 그것 때문에 심지어 외국의 석학들도 계엄 해제 과정에서 신속한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을 보여 준 데는 여야가 함께했기 때문이라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우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조차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더구나 방송법 문제에서까지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존경하는 김현 소위원장님의 평소의 철학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함께 풀어야 될 문제고 이게 우리가 여당일 때, 우리가 다수당일 때도 했지만 또 민주당이 다수당이고 여당일 때도 함께 합의해서 이루어서 만들어 온 법안입니다.
2024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지금은 국회의 시간입니다.
이제 우리 국회가 계엄의 뇌관을 제거해서 새로운 정치 발전을 이끌 시간이 왔습니다.
그날 밤 우리가 확인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힘이고 또 대한민국 국회의 신속한 행동능력이고 또 우리 군이 더 이상 계엄이라든가 군사 쿠데타에 동원될 수가 없는 조직이구나, 더 이상 그 같은 행위가 일어날 수 없겠구나를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에 대해서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회의 시간입니다.
이제 우리 국회가 계엄의 뇌관을 제거해서 새로운 정치 발전을 이끌 시간이 왔습니다.
그날 밤 우리가 확인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힘이고 또 대한민국 국회의 신속한 행동능력이고 또 우리 군이 더 이상 계엄이라든가 군사 쿠데타에 동원될 수가 없는 조직이구나, 더 이상 그 같은 행위가 일어날 수 없겠구나를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에 대해서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30분만 늦게 모였어도 지금 계엄 상황입니다.
(우원식 의장, 주호영 부의장과 사회교대)
저는 지역 마산에서 마침 집안에 상이 있어서 문상을 하고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10시 반에 KTX 속에서 계엄 소식을 긴급속보로 확인했습니다.
처음에 페이크 뉴스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야 되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 동료 의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화·산업화 본산, 대한민국 AI 디지털 자유무역도시 마산합포 최형두입니다.
그날 밤 우리 선배·동료 의원들 용감했습니다.
우리가 그날 계엄의 뇌관을 제거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계엄령이라는 어두운 기억을 갖고 있던 세대였습니다.
(우원식 의장, 주호영 부의장과 사회교대)
그날 밤 우리 선배·동료 의원들 용감했습니다.
우리가 그날 계엄의 뇌관을 제거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계엄령이라는 어두운 기억을 갖고 있던 세대였습니다.
(우원식 의장, 주호영 부의장과 사회교대)
저는 지역 마산에서 마침 집안에 상이 있어서 문상을 하고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국힘 당사는 대상이 아니었어요」 하는 의원 있음)
아닙니다.
계엄 포고령에 보면 국회와 지방의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계엄의 뇌관을 해제했던 용감했던 선배·동료 국회의원들이 이제는 정치의 시간을 같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데 저는 순간 그때 당사로 가야 되나, 국회로 가야 되나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건대는 당사가 훨씬 위험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계엄군이 진짜로 진압에 나섰고 조금 더 일찍 나섰더라면 수천 명 가까운 시민들과 또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모여 있는 국회보다도 당사가 훨씬 더 빨리 제압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사냐 국회냐 이걸 가지고 우리 동료 의원들을 의심하지 맙시다.
(「국힘 당사는 대상이 아니었어요」 하는 의원 있음)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민주주의 제도, 우리 의회가 민주주의를 지켰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서 일부는 우리 일부 동료를 비난하는데 이건 매우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저보다 연배가 조금 낮은 세대는 계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도 계엄 직후에 대학을 입학했습니다만 계엄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날 듣고서 과연 국회로 가야 되나 사실 생각했습니다.
혼자 약간 비겁한 생각도 했습니다, 나는 집안에 상이라는 이유도 있고 마산에 있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