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현일의 계엄 발언
2026
왜 그러냐면 경찰 1차 수사권·종결권이 유례없이 막강해졌습니다.
그것치고는 위원회가 유명무실, 역할을 못 한다는 그런 평가가 있고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또 하나가 위원장님 계실 때 경찰기동대와 수사인력이 국회를 봉쇄했잖아요, 그 당시 12·3 불법 비상계엄 때.
그런데 위원회는 그 당시 12월 16일 날, 2주일 후에 회의를 하고 나서 회의록을 보니까 계엄에 대해서 질타나 대국민 사과조차 전혀 없었더라고요.
한번 그 당시 간단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것치고는 위원회가 유명무실, 역할을 못 한다는 그런 평가가 있고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또 하나가 위원장님 계실 때 경찰기동대와 수사인력이 국회를 봉쇄했잖아요, 그 당시 12·3 불법 비상계엄 때.
그런데 위원회는 그 당시 12월 16일 날, 2주일 후에 회의를 하고 나서 회의록을 보니까 계엄에 대해서 질타나 대국민 사과조차 전혀 없었더라고요.
한번 그 당시 간단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래서 이제는 조만간 경찰 인사가 있다는 것이고.
또한 이번에 중수청도 출발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형사사법시스템하에서 경찰청장 임명은 당연한 것이고 야당에서 주장하는 그것은 일방적인 주장이다, 비상계엄의 그런 아픈, 그런 어떤 경찰의 역사에서 씻지 못할 그러한 과오에 대해서 정확하게 씻고 처리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장관님께서 좀 그런 입장을 말씀해 주시는 게 낫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 오해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장관님, 경찰청장의 임명이 지연된 거에 대해서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찰청장이, 초유의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조지호 청장이 탄핵된 게 1년 만에, 그러니까 12·3이 있고 나서 작년 12월 달에 파면됐잖아요.
사법부 개혁에 대해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벼랑 끝에 섰잖아요.
그 당시에 조희대 대법원이 그날 계엄 당일 날 한 행태에 대해서 상당히 국민들의 불신이 큽니다.
헌정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던 그 절체절명 순간에 사법부 수뇌부는 불법계엄에 순응할 준비, 예를 들어서 비상간부회의를 그날 새벽에 열어서 재판절차나 따지며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대법원의 이러한 대응, 헌법의 최후 보루로서 대법관후보자로서 부끄럽고, 굴욕적이고, 안일한 태도였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벼랑 끝에 섰잖아요.
그 당시에 조희대 대법원이 그날 계엄 당일 날 한 행태에 대해서 상당히 국민들의 불신이 큽니다.
헌정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던 그 절체절명 순간에 사법부 수뇌부는 불법계엄에 순응할 준비, 예를 들어서 비상간부회의를 그날 새벽에 열어서 재판절차나 따지며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대법원의 이러한 대응, 헌법의 최후 보루로서 대법관후보자로서 부끄럽고, 굴욕적이고, 안일한 태도였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말씀해 보세요.
2025
전방부대에서 또 주변 부대에 대북전단을 보낸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분계선 근처의 감시초소 GP와 GOP 경계병사들은 북쪽으로 날아가는 풍선을 보고 상부에 당연히 보고를 했고 이런 식으로 비상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병사는 증언에서 북한의 오물풍선을 다룬 뉴스에서는 북한이 도발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먼저 시작한 대북전단 도발에 대한 그들의 보복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3 계엄이 터진 뒤에는 우리가 먼저 북한에 시비를 걸려고 했던 거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고 얼마 전 특검이 수사한 평양 무인기 보도를 보면서는 내가 했던 일이 내란 계획의 일부였던 거구나 하면서 가슴이 철렁했다고 하면서 인터뷰를 마친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병사 이 제보자는 우리 군이 먼저 대북전단을 보냈기 때문에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냈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도발한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대북전단으로 도발했고 오물풍선은 그들의 보복이라는 것입니다.
대북전단 살포가 어려워지자 무인기를 투입하여 도발을 유도하고 계엄의 명분을 만들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북전단, 무인기 그리고 오물풍선은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를 통해 비상계엄의 명분을 조성했습니다.
대북전단은 북한의 오물풍선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됐고 특히 무인기 사건은 이러한 긴장 관계를 증폭시키는 중대한 분기점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대북전단 살포에 동원됐던 한 병사의 증언이 언론 인터뷰에 공개됐습니다.
북한이 밝힌 무인기 침투는 10월 3일, 9일, 10일, 총 세 차례에 달합니다.
기존 방식으로 심리전이 어려워지자 무인기를 활용해 전단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북한 내부를 직접 겨냥한 것입니다.
대북전단 살포가 어려워지자 무인기를 투입하여 도발을 유도하고 계엄의 명분을 만들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북전단, 무인기 그리고 오물풍선은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를 통해 비상계엄의 명분을 조성했습니다.
이후 윤석열은 1월 31일 이례적으로 중앙통합방위회의와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어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후방 교란 등을 언급하면서, 또한 국무회의에서도 반국가세력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있다며 북풍몰이에 나섰습니다.
특히 3월 말 삼청동 안가에서 윤석열은 국가안보의 핵심인 김용현, 신원식, 조태용, 여인형과 만나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 내용은 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유도해 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치밀하게 해 왔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제22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은 참패했고 윤석열은 결국 비상계엄 발동을 위한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돌입했습니다.
이때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는 핵심 수단으로 등장하는 것이 오늘 언급된 대북전단 살포입니다.
대북전단 살포는 4월 총선 이후에 급증했습니다.
대북 정찰용 무인기 투입은 물론 육상·해상의 모든 적대행위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윤석열은 1월 31일 이례적으로 중앙통합방위회의와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어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후방 교란 등을 언급하면서, 또한 국무회의에서도 반국가세력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있다며 북풍몰이에 나섰습니다.
특히 3월 말 삼청동 안가에서 윤석열은 국가안보의 핵심인 김용현, 신원식, 조태용, 여인형과 만나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 내용은 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유도해 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치밀하게 해 왔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제22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은 참패했고 윤석열은 결국 비상계엄 발동을 위한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돌입했습니다.
이때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는 핵심 수단으로 등장하는 것이 오늘 언급된 대북전단 살포입니다.
존경하는 윤건영 위원님께서 정확하게 말씀하셨는데 추가적인 것 간단하게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당현수막 이 법을 기존에 3년 전에 했던 것을 원상 회복한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2·3 내란 불법계엄 이후로 극단적인 혐오, 차별 또 그것을 통해서 아까 얘기했듯이 민생 현안이 됐습니다.
지역에 가면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게 불법현수막입니다.
국회는 뭐 하고 있느냐.
그런데 프리랜서만 이렇게 뺀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저도 국회에 있으면서 항상 느끼는 게 국회방송의 콘텐츠와 질입니다.
그리고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대중성, 특히 국회의 위상에 맞춰 또 계엄과 내란 이후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높아졌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국회방송에서 특수한 환경, 생방송도 많고 여러 가지 생중계도 많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가장 고생하시는 분들이 근로자, 프리랜서, 작가, 수어통역사 등이에요.
박수민 위원님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상당 부분 동의를 합니다.
아까 1페이지 보면 그 당시 강병원 법안소위 위원장이 이 내용에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법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그런 본질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런데 그 당시에도 지금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당활동의 자유 그리고 정당의 자율성에 대한 어떤 선이 그리고 자정작용이 될 거라는 또 유권자의 판단에 따를 거라 했는데 그 선을 이미 넘었다고 저는 봅니다.
특히 지난 불법계엄 전후로 해 가지고 도저히 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정치권에서도 또 일반 국민들도 수인의 한도를 넘었다고 보고 있고요.
그리고 아까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도시 미관, 안전 그리고 환경,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과연 정당현수막이 필요한가.
그리고 지금 SNS나 인터넷, AI, 어떤 여러 가지 차원에서, 오프라인 아닌 온라인 차원에서 충분히 정보 공유가 되고 그런 시대인데 굳이 현수막을 환경을 침해하고 무분별하게 도시 공해를 일으키면서 할 필요가 있는가.
그래서 이광희 위원님이 말씀하신 그 취지대로 과거로, 철거를 해서 아예 전면적으로 달지 않게 하는 방안 또 하나는 지금 있는 그거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하는 방안, 그게 아마 여기 옥외광고물법과 정당법 제가 낸 법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좀 해야 되고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지금 온라인상으로 정당이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우리가 의정보고서나 여러 가지 이런 것을 하지만 현수막이 아니더라도 SNS 그리고 여러 가지 온라인상으로 홍보가 되고 있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오프라인으로 현수막을 꼭 게재를 해야지만 우리가 정당활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거나 표현의 자유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아까 얘기했듯이 극단의 정치적인 혐오와 언어 특히 불법계엄 이후로 너무 극단화되었기 때문에 냉각기를 두고 과거로 돌아가는 게 일차적으로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또 하나가 재난대응 매뉴얼이에요.
국회에 재난대응 훈련이 딱 2개입니다.
을지연습하고 민방위훈련인데 제가 국회 위기대응 매뉴얼에 보니까 계엄 등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이나 이런 건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도 사무총장님께서 관련 부서랑 상의해 가지고 보완을 해야 될 것 같고요.
또 하나가 원격 영상회의입니다.
사무총장님, 밤늦게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12·3 계엄 사태 이후로 교훈이 아마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국회가 돼야 된다.
또 하나가 국민의 자유, 헌정체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국회다.
선관위 사무총장님, 12·3 계엄이 이제 1년 돼 갑니다.
지난번 중앙선관위 과천청사 2층의 전산실, 서버실에 들어갔는데 그때 CCTV 영상을 보면 물리적 장애나 어떤 제지 절차가 전혀 없이 갔던 영상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선관위에서 보완을 위한 보안장치나 방호체계 강화 조치를 한 게 있나요?
후보자님께서 총론적으로 말씀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불법계엄, 내란으로 인해 가지고 치러지는 대선에서 사법부가 정치 개입을 했다는 그 문제 때문에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지귀연 판사가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계산해서 듣도 보도 못한 계산법으로 해 가지고 내란 우두머리를 석방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유력 대선주자의 재판을 사건배당 당일 즉시 전원합의체로 회부하고 6만 쪽에 달하는 사건 기록을 단 9일 만에 검토해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또 한덕수 총리 회동 의혹까지 나와 가지고 청문회까지 열린 이런 웃지 못할 일이 생긴 겁니다.
검찰청 폐지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권과 또 국민의힘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입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한 불통과 독선, 권력을 사유화하며 민주주의를 짓밟은 불법 비상계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정 전반을 검찰의 손아귀에 맡긴 검찰공화국의 행태, 이러한 반민주주의이고 반헌법적인 행태가 결국 검찰을 역사의 뒤안길로 불러온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국민의힘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윤석열 정부의 국정농단과 검찰 독재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있고, 특히 검찰청이 폐지될 정도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당이 이제 와서 적반하장 격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만약 그 기록이 없었다면 쿠데타 세력의 거짓 주장만 남았을 것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민군의 활동, 계엄군의 진압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기에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계엄사령부가 기록을 왜곡하거나 삭제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록과 증언들이 지금까지 보존되었기에 진상규명이 가능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민군의 활동, 계엄군의 진압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기에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계엄사령부가 기록을 왜곡하거나 삭제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록과 증언들이 지금까지 보존되었기에 진상규명이 가능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 참사 역시 기록이 없었다면 진실은 묻혔을 것입니다.
지난 12·3 불법계엄, 내란 이후에 인수위도 없이 100일 동안 쉼 없이 달려왔잖아요.
또 이재명 대통령께서 국내외 여러 가지, 관세 협상부터 어떻게 보면 윤석열 정부가 해결치 못한 그런 난제들을 하나 하나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되는 건데 그중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정부조직법인 거지요.
그런데 또 하나 충격적인 것은, 아마 장관님이 이것 살펴보실 문제인데 불법 계엄 닷새 후에, 12월 3일 이후 12월 8일 날 이상민 장관이 사퇴를 했습니다.
민간인이었지요.
그런데 민간인 신분인데도 행안부 직원들과 계엄 관련 자료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언론 보도도 나왔고요.
자신의 동선과 관련된 일정 자료 등을 요청해서 받았고 또 특검의 주장에 따르면 유리한 증거를 모으고 불리한 증거를 막으려고 한 것 아니냐, 이 자체가 증거인멸이라는 입장입니다.
장관님, 이상민 전 장관이 지난 8월 1일 구속이 됐습니다.
내란 공범이라는 혐의였고요.
불법 계엄 방조,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등 또 계엄 당일 날 CCTV, 계엄 문건까지 이렇게 나왔다는 이런 보도가 또 있었고요.
그런데 구속의 핵심 사유가 증거인멸이었습니다, 증거인멸에 대한 우려였고.
그런데 또 하나 충격적인 것은, 아마 장관님이 이것 살펴보실 문제인데 불법 계엄 닷새 후에, 12월 3일 이후 12월 8일 날 이상민 장관이 사퇴를 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몰락한 것 중의 하나가 구시대적인 이념, 가치 외교, 냉전적 사고방식, 반지성적인 가치 외교, 이런 정치적·이념적 편향 때문에 결국은 계엄까지 저질러서 나라를 두 동강 낸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서에 보면 후보께서 세계지도, 한국지도를 옛날에 독방, 한 평 남짓 독방에 있을 때 지도를 벽에 거꾸로 붙여 놨는데 그 이유가 뭐가 있나요?
백신 공급 문제로 상당히 어려울 때 정부, 청와대와 협의해 가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 그리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을 제일 먼저 주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K-방역을 성공하고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유치를 선도했습니다.
세 번째는 불법 계엄 저지입니다.
2024년 8월 17일,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그 당시 국방위에서 후보께서 계엄이 있다는 것을 말할 때 다, 본 위원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통찰력입니다.
그리고 K-방역을 성공하고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유치를 선도했습니다.
세 번째는 불법 계엄 저지입니다.
2024년 8월 17일,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그 당시 국방위에서 후보께서 계엄이 있다는 것을 말할 때 다, 본 위원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통찰력입니다.
정치적인 통찰력이라고 보는데 국방부장관 교체는 국지전, 북풍 조성을 통한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최초로 공론화했습니다.
2024년 8월 17일,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그 당시 국방위에서 후보께서 계엄이 있다는 것을 말할 때 다, 본 위원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통찰력입니다.
정치적인 통찰력이라고 보는데 국방부장관 교체는 국지전, 북풍 조성을 통한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최초로 공론화했습니다.
그리고 9월 달에는 계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후보께서 말씀하셨듯이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이 2025년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통찰력입니다.
정치적인 통찰력이라고 보는데 국방부장관 교체는 국지전, 북풍 조성을 통한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최초로 공론화했습니다.
그리고 9월 달에는 계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후보께서 말씀하셨듯이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이 2025년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후보가 18년 동안, 그간 겪은 고초와 역경 그런 것이 결국은 준비된 리더십, 내공, 통찰력이라고 봅니다.
새로운 국무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파트너로서 국가도 통합하고 위기를 관리할 준비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제가 후보의 경력을 보다 보면 세 가지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IMF 외환위기 극복, 두 번째는 코로나 위기 극복, 세 번째는 불법 계엄 저지입니다.
첫 번째, IMF 외환위기 극복, 1997년도에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IMF 비상경제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IMF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그 당시 국정조사특위에도 참여를 해서 그러한 경험들이 아마 지금 민생 위기, 제2의 IMF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