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직후 일본 측은 2차 사고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갱구를 폐쇄했고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183명의 희생자들의 유해는 단 한 구도 수습되지 못한 채 모두 수몰되었습니다.
김준혁 국회의원, 2025-02-26,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앞뒤 문장
이 때문에 장생 탄광은 속칭 조선 탄광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1942년 2월 3일 오전 6시경 갱도에서 누수가 발생해 해저 갱도의 천장이 무너졌습니다.
사고 직후 일본 측은 2차 사고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갱구를 폐쇄했고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183명의 희생자들의 유해는 단 한 구도 수습되지 못한 채 모두 수몰되었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장생 탄광의 갱구와 탄광 유구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유구가 철거되고 갱구 위치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