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혁명재판부가 용공의 의미로 예시한 기사들의 제목을 보면 ‘민족적 자생적 노력으로써 남북협상의 단계에까지 정세를 발전시키라’, 1961년 5월 16일 자입니다.
이주희 국회의원, 2025-09-25, 국회 본회의
앞뒤 문장
그럼에도 민족일보를 용공으로 몰아 발행인 조용수를 사형시켰습니다.
이는 민족일보가 당시로서는 혁신 세력들이 모인 곳이었고 쿠데타 정권은 혁신 세력을 제거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혁명재판부가 용공의 의미로 예시한 기사들의 제목을 보면 ‘민족적 자생적 노력으로써 남북협상의 단계에까지 정세를 발전시키라’, 1961년 5월 16일 자입니다.
‘범민족적인 통일 민족의 추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 날짜입니다.
5월 12일 자로 ‘우선 체육 교류부터라도 시작하자’, 5월 9일 자로 ‘모처럼 찾은 통일외교의 이니시아팁을 뺏기지 말자’, 5월 5일 자로 ‘남북학생회담 갖게 하라’, 4월 10일 자로 ‘이북 쌀, 이남 전기, 젊은 사자들의 침묵된 데모’ 등 통일과 관련된 주장들을 언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