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처음에는 사대주의로부터 출발했지만 그러다가 중국 청나라의 고증학을 공부하고 나서 북한산에 올라가서 저 순수비가 당시 무학대사가 세운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 이끼를 뜯어 내고 딱 보니까 글자가 쓰여 있는데 이 글자가 뭔 글자인지 너무 이끼가 많아서 심하니까 다시 내려가 가지고 탁본기술자를 데리고 올라가는 것 아닙니까.
김준혁 국회의원, 2025-09-25, 국회 본회의
앞뒤 문장
그런데 추사가 마지막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를, 중국을 뛰어넘어 버린 거야.
그래서 추사가 위대한 겁니다.
추사가 처음에는 사대주의로부터 출발했지만 그러다가 중국 청나라의 고증학을 공부하고 나서 북한산에 올라가서 저 순수비가 당시 무학대사가 세운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 이끼를 뜯어 내고 딱 보니까 글자가 쓰여 있는데 이 글자가 뭔 글자인지 너무 이끼가 많아서 심하니까 다시 내려가 가지고 탁본기술자를 데리고 올라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끼 다 떼고 탁본해 갖고 딱 와서 보니까 이게 무학대사가 한양도성 정하기 위해서 세웠다라고 하는 그 얘기가 아니라 진흥왕이 신라의 영토가 북한산까지다라고 하는 것을 새겨 놓은 영토비였던 거지.
그것을 순수비라고 한 것 아닙니까, 순수비.